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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1 대장내시경 그리고 ...

얼마전 대장내시경을 비수면으로 했다. 수면으로 할 경우 (환자 부담) 전체 비용의 3분의 2가 수면약 비용이었고(배 보다 배꼽이...) 위 내시경 보다는 덜 힘들다는 간호사의 말에 전격적으로 비수면으로 신청을 해 버렸다. 나는 위 내시경을 비수면으로 수도 없이 해 봤기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비수면 대장내시경도 별거 아닐거라 생각했다.

비수면으로 신청한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수면 내시경은 위, 대장 각각 두 번 씩 해 본 경험이 있다. 처음 수면 위내시경을 했을 때는 수면유도제(?)를 팔에 꽂은 관을 통해 주입하는 것을 보는 순간 잠이 들어버렸고, 얼마 후 처음 누워 있었던 방에서 5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방에서 나는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었다. 꿈도 안 꾼 듯 했다 간호사에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어보니, 부축해서 왔었다며, 하나도 기억 안 나세요 하고 물어보면서 신기하다는 표정 또는 약간 웃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내가 뭔 짓을...)
처음 경험으로는 수면내시경은 참 편한 방법이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고, 잠이 덜 깰 수 있어서 운전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이었다. 나중에 그 수면유도제가 프로포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위 내시경 결과 용종이 발견되어 그 해에 위내시경을 몇 번 더 해야만 했다. 결국 대단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 했지만...
그런데 두 번 째 내시경 때는 첫번째보다 수면유도제 양을 줄인건지, 아니면 나한테 내성이 생긴건지, 또는 처음에 용종이 발견되어 자세히 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건지, 내시경 도중에 잠이 깨고 말았다. 잠이 깬 나의 목구멍 안에는 내시경 관이 삽입되어 있었던 터라, 깨자마나 나는 캑캑 대며 엄청 힘든 순간을 보내야 했다. 차라리 비수면으로 하는 것이 더 나았다. 그 후로는 나는 항상 위내시경은 비수면으로 했고 요령도 많이 생겨 아주 편하게(?) 비수면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대장내시경은 얼마전에 받은 것 말고 지금까지 두 번 했었는데, 두 번 모두 수면으로 진행했고 끝날 때 쯤 잠이 깨어 첫번째 때는 화면으로 나의 대장 상황을 보기도 했었다. 두 번 째 대장내시경을 마치고 잠이 깼을 때는 간호사가 옆에 있었는데, 그 간호사에게 내 어릴 때 옆집에 살던 누나를 닮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참 실없는 얘기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술 취하면 말이 많아져서 내용도 없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처럼... 그 간호사도 경험이 많아서인지, 나의 실없는 얘기를 잘 받아주고 있었다. 그 때 약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다음에는 수면으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던거 같다. (그게 4~5년전 일이다.)

마침내 처음으로 비수면 대장내시경을 해본 결과, 위내시경과는 달리 관이 들어갈 때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는데, 들어가서 대장이 꺾이는 곳을 돌아들어갈 때인지는 몰라도 두 세 번 정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배 안에서 쇠공 같은 것이 배 밖으로 미는 듯한 느낌... 나는 마치 고문 당하는 사람처럼 침대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비수면으로 신청한 것을 엄청 후회하면서...
그래도 고통의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겨우 수습하고 나와 10분 정도 숨을 돌리니 상황은 다 끝났고 대장도 깨끗하다는 결과를 들었다. 병원을 나와 전날부터 비어 있던 배를 채우며 생각해 보았다.
다행이도 통증은 기억되지 않고, 통증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특이한 점은, 내가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도 간호사나 의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 내시경 때는 조금만 힘들어해도 힘 빼세요, 힘 빼세요 하면서 몸을 잡아주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으례 그려러니 하는 것처럼...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다 비슷한 모양이다. 수면이든 비수면이든...
인터넷을 찾아보니 역시나 수면유도제라는 것이 마취제와 달라서 통증은 그대로인데, 기억만 못할 뿐이라고 한다. 
수면 내시경을 해도 비명은 어차피 질러야 한다. 다만 기억은 안 난다. 
나도 통증이 있었다는 기억만 난다. 어떻게 아팠는지 그 아픈 느낌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담에도 비수면으로?

기억되지 않으면 경험하지 않은 것과 같다. 어떤 행동을 했는데 기억에도 없고, 행동의 결과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 행동은 없었던 것과 같다. 술 먹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건 자신이 한 짓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인생에서 지우고 싶어서일 것이다. 
내세가 있다해도 그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 뿐이다. 

밤에 잘 때 사람들은 많은 꿈을 꾼다고 한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깨기 직전의 짧은 부분만 기억난다. 그것도 자꾸 되새기거나 기록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린다. 아침에는 신기한 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후에는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꿈 뿐 만이 아니다. 얼마전에는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뭔가 이상한(?) 또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 집에 도착해서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하면서 집에 왔는데, (2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그 이상하다는 또는  신기하다는 생각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떠오른 지점이 어디였는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치맨가?

행동이나 범죄는 세상에 흔적을 남겨서 부정할 수가 없지만 꿈이나 생각은 기록하지 않으면 흔적도 없고 기억도 없어지고, 결국엔 꾸지 않은 꿈이고, 하지 않은 생각이 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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