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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1 대장내시경 그리고 ...
  2. 2008.07.24 한국인의 민족성

얼마전 대장내시경을 비수면으로 했다. 수면으로 할 경우 (환자 부담) 전체 비용의 3분의 2가 수면약 비용이었고(배 보다 배꼽이...) 위 내시경 보다는 덜 힘들다는 간호사의 말에 전격적으로 비수면으로 신청을 해 버렸다. 나는 위 내시경을 비수면으로 수도 없이 해 봤기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비수면 대장내시경도 별거 아닐거라 생각했다.

비수면으로 신청한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수면 내시경은 위, 대장 각각 두 번 씩 해 본 경험이 있다. 처음 수면 위내시경을 했을 때는 수면유도제(?)를 팔에 꽂은 관을 통해 주입하는 것을 보는 순간 잠이 들어버렸고, 얼마 후 처음 누워 있었던 방에서 5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방에서 나는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었다. 꿈도 안 꾼 듯 했다 간호사에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어보니, 부축해서 왔었다며, 하나도 기억 안 나세요 하고 물어보면서 신기하다는 표정 또는 약간 웃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내가 뭔 짓을...)
처음 경험으로는 수면내시경은 참 편한 방법이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고, 잠이 덜 깰 수 있어서 운전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이었다. 나중에 그 수면유도제가 프로포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위 내시경 결과 용종이 발견되어 그 해에 위내시경을 몇 번 더 해야만 했다. 결국 대단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 했지만...
그런데 두 번 째 내시경 때는 첫번째보다 수면유도제 양을 줄인건지, 아니면 나한테 내성이 생긴건지, 또는 처음에 용종이 발견되어 자세히 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건지, 내시경 도중에 잠이 깨고 말았다. 잠이 깬 나의 목구멍 안에는 내시경 관이 삽입되어 있었던 터라, 깨자마나 나는 캑캑 대며 엄청 힘든 순간을 보내야 했다. 차라리 비수면으로 하는 것이 더 나았다. 그 후로는 나는 항상 위내시경은 비수면으로 했고 요령도 많이 생겨 아주 편하게(?) 비수면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대장내시경은 얼마전에 받은 것 말고 지금까지 두 번 했었는데, 두 번 모두 수면으로 진행했고 끝날 때 쯤 잠이 깨어 첫번째 때는 화면으로 나의 대장 상황을 보기도 했었다. 두 번 째 대장내시경을 마치고 잠이 깼을 때는 간호사가 옆에 있었는데, 그 간호사에게 내 어릴 때 옆집에 살던 누나를 닮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참 실없는 얘기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술 취하면 말이 많아져서 내용도 없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처럼... 그 간호사도 경험이 많아서인지, 나의 실없는 얘기를 잘 받아주고 있었다. 그 때 약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다음에는 수면으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던거 같다. (그게 4~5년전 일이다.)

마침내 처음으로 비수면 대장내시경을 해본 결과, 위내시경과는 달리 관이 들어갈 때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는데, 들어가서 대장이 꺾이는 곳을 돌아들어갈 때인지는 몰라도 두 세 번 정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배 안에서 쇠공 같은 것이 배 밖으로 미는 듯한 느낌... 나는 마치 고문 당하는 사람처럼 침대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비수면으로 신청한 것을 엄청 후회하면서...
그래도 고통의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겨우 수습하고 나와 10분 정도 숨을 돌리니 상황은 다 끝났고 대장도 깨끗하다는 결과를 들었다. 병원을 나와 전날부터 비어 있던 배를 채우며 생각해 보았다.
다행이도 통증은 기억되지 않고, 통증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특이한 점은, 내가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도 간호사나 의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 내시경 때는 조금만 힘들어해도 힘 빼세요, 힘 빼세요 하면서 몸을 잡아주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으례 그려러니 하는 것처럼...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다 비슷한 모양이다. 수면이든 비수면이든...
인터넷을 찾아보니 역시나 수면유도제라는 것이 마취제와 달라서 통증은 그대로인데, 기억만 못할 뿐이라고 한다. 
수면 내시경을 해도 비명은 어차피 질러야 한다. 다만 기억은 안 난다. 
나도 통증이 있었다는 기억만 난다. 어떻게 아팠는지 그 아픈 느낌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담에도 비수면으로?

기억되지 않으면 경험하지 않은 것과 같다. 어떤 행동을 했는데 기억에도 없고, 행동의 결과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 행동은 없었던 것과 같다. 술 먹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건 자신이 한 짓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인생에서 지우고 싶어서일 것이다. 
내세가 있다해도 그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 뿐이다. 

밤에 잘 때 사람들은 많은 꿈을 꾼다고 한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깨기 직전의 짧은 부분만 기억난다. 그것도 자꾸 되새기거나 기록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린다. 아침에는 신기한 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후에는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꿈 뿐 만이 아니다. 얼마전에는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뭔가 이상한(?) 또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 집에 도착해서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하면서 집에 왔는데, (2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그 이상하다는 또는  신기하다는 생각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떠오른 지점이 어디였는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치맨가?

행동이나 범죄는 세상에 흔적을 남겨서 부정할 수가 없지만 꿈이나 생각은 기록하지 않으면 흔적도 없고 기억도 없어지고, 결국엔 꾸지 않은 꿈이고, 하지 않은 생각이 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AND

한국인의 민족성

나의 글 2008. 7. 24. 23:55
2002 월드컵과 최근의 촛불시위 등,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다른나라의 국민들과는 좀 다르다. 열정적이고, 잘 흥분하고, 또 잘 잊어버리고... 뭐 이런 인식들이 정말로 그런 것인지 다른나라 사람들과 과학적인 비교 분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분석했을지도 모를 일) 아무튼 좀 다른 것 같다.
물론 남미나 스페인 또는 이탈리아 등의 민족들도 그런 계통이라고들 한다. 특히 반도의 지형에 형성된 나라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대륙과 바다를 함께 접하면서, 날씨의 영향 때문인지, 또는 지정학상의 위치 때문에 전쟁을 많이 치루어서인지,...
이것 또한 과학적인 분석이 있었던(보았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과학적인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은 생각을 한번 더 해보았다.

언젠가 TV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의한 그곳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보여주는 프로를 보다가 언듯 떠오른 생각이다. 그곳에서 그 사람들은 농작물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산악지역에서 힘겹게 살고들 있었다. 그런 곳에 왜 저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있을까? 좀 더 살기 좋은 곳(농작물도 잘 자라고, 사냥할 동물이 많거나, 과일들이 잘 자라는 곳 등)을 찾아 떠나지 못하는 그들이 조금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민족도 원래는 우랄 산맥의 고원 지역에서 살고 있다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여기 한반도까지 이동해 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곳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거리를 이동해서 한반도에 정착하였고, 일부는 일본까지 갔으니... 아마도 한반도가 어떤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더 이동했을 것이다...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민족... 다른 곳을 찾아봐야 비슷비슷하고 집 떠나봐야 고생만 할테니 힘들더라도 산악지역에 그냥 머물러 있는 민족... 이러한 차이를 생각해 보면 우리민족이 그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전자에 의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덜 진취적인 사람들은 중앙아시아 지역 등에서 주저 앉았을테고, 황하 유역에서는 아마도 힘이 더 센 주위 민족들과의 싸움 때문에 버티지 못하였거나, 또는 사방이 뚫려 있는 넓은 지역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힘과 배짱이 있어야 했기에 그런 사람들만 그곳에 남고, 그런 곳은 마음이 불편해서 또는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또 다른 곳을 찾아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오지 않았을까?...

이탈리아나 이베리아 반도의 사람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논쟁일 수도 있지만, 한반도라는 지역의 자연적인 특성이나 지정학적인 특성이 우리 민족의 특성을 결정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곳 한반도까지 이동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진화론적인 관점과 비슷한 생각을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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